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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일본이 폭발적인 관광객 증가에도 웃지 못하는 이유

by 미미요정 2024. 3. 19.

전편: '치고 빠지기'에 성공한 고령층? 일본 청년들이 일할 생각이 없는 이유


일본이 폭발적인 관광객 증가에도 웃지 못하는 이유

[교양이를 부탁해] 일본을 말하다 ② - 이창민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일본학과 교수

작성 2024.01.04 07:00 수정 2024.02.01 11:33 조회수 105000 by 교양이를 부탁해

 
일본 관광객이 늘기 시작한 건 최근뿐만이 아닙니다. 원래는 2013년 아베노믹스 때부터 계속 늘었거든요. 최대로 많이 늘었을 때가 2018~2019년인데 3천만 명까지 다다랐어요. 이후에는 코로나 때문에 2021년 25만 명, 최하로 떨어졌다가 2023년 들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회복을 한 거죠. 작년 10월 기준으로 관광객이 2천만 명 왔는데요, 그중 4분의 1이 한국인이었어요. 2019년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엔저가 되면서 관광객도 많이 늘었지만 또 우리가 생각해야 되는 것이 외국인 투자가 많이 늘었어요. 그래서 기업에 관련된 실적도 많이 개선됐는데, 문제는 엔저가 되면 수입 물가가 많이 올라요. 그렇게 되면 기름값도 오르고 밀가루 가격도 오르기 때문에 서민들의 생활 수준이 하락합니다. 물론 임금이 오르면 어느 정도 커버가 되겠지만, 현재 임금이 오르는 속도보다 물가 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서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일본의 빅맥 같은 경우도 30년 동안 한 번도 가격이 오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재작년에 410엔 되고 작년에 450엔 됐습니다. 일본의 젊은 친구들은 400엔대 빅맥을 처음 본 거예요. 너무 충격이었던 거죠. 이런 식으로 물가가 오르고 있기 때문에 사실 엔저가 되면서 서민들은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1. 일본은 호황일까 아닐까

 

일본이 호황이냐 아니냐라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봐야 되는 게 경기 순환이거든요. 확장기가 됐다가 다시 수축기가 되는 일종의 비즈니스 사이클이 있잖아요. 일본이 지금 제17 순환의 확장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경기가 확장되고 있는 상황은 맞아요. 또 고려해야 할 게, 코로나 때 전 세계 경기가 침체됐었죠. 2020년이 제일 바닥이었고 이후에 2021년, 2022년이 되면서 대부분 회복을 했어요. 그런데 일본은 회복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한 1~2년 늦었습니다. 2023년 와서야 겨우 2019년 수준이 됐거든요. 사실 일본은 뒤늦게 회복을 한 건데 우리가 보기에는 시차가 있는 거죠.

하지만 이런 걸 감안하더라도 30년 만에 관찰되는 변화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 기업의 국내 투자가 30년 만에 늘고 있고 또 임금 상승이 30년 만에 아주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어요. 그럼 왜 일본은 그동안 국내에 투자를 하지 않고 임금도 오르지 않았을까요? 플라자합의* 때 일본의 기업들은 엔고를 피해서 해외로 진출을 했습니다.
*플라자 합의: 미국의 달러화 강세를 완화하려는 목적으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의 재무장관들이 맺은 합의

수출이 불리하니까 직접 해외에 가서 생산 거점을 만들고 그곳에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했는데, 나중에 일본이 장기 침체에 빠져 국내 자본 수익률이 낮아지고 내수가 축소되니까 기업들은 계속해서 밖으로 밖으로 나갔거든요. 그런데 그 와중에 아베노믹스*가 실시되면서 이제 엔저가 된 거죠.
*아베노믹스: 2012년부터 시행한 경제정책으로, 과감한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확대, 경제성장 전략을 주 내용으로

 

엔저가 되면 기업들이 너무 좋은 게 아무것도 안 해도 영업이익이 개선돼요. 왜냐하면 미국에서 1달러짜리 물건을 만들어서 판다고 했을 때 그 1달러를 가지고 있으면 엔화 가치가 떨어지니까 앉은자리에서 환차익을 얻는 거죠. 1달러에 110엔일 때와 150엔일 때를 비교해 보면 엔(¥)으로 환산했을 때 이익이 훨씬 늘어나죠. 그래서 이 환차익 때문에 기업의 영업이익이 개선되면서 실적이 좋아지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기업 상황이 좋아져도 국내에 투자를 하는 등의 뭔가를 하지 않습니다. 해외에 그대로 가지고 있거나 해외 생산시설에서 재투자하거나 이랬거든요. 왜냐하면 국내는 이미 자본 수익률이 낮아서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를 해도 별로 수지가 안 맞아요. 게다가 투자를 안 하다 보니까 일본의 노동 생산성도 낮고, 그럼 임금도 올라가지 않겠죠.

기업들은 엔저로 환차익을 얻어서 영업이익이 개선되는데 국내는 투자도 하지 않고 임금도 오르지 않으면 사람들은 소비도 안 할 거고요. 기업은 호황인데 가계는 불황인 상태가 되고, 이걸 미지근한 호황이라고 해서 ‘저온 호황’이라고 이야기해요. 반쪽짜리 호황이 이어지는 거죠. 최근 들어 분위기가 약간 반전이 됐습니다. 기업이 국내 투자를 하기 시작했어요.

일본의 국내 설비 투자를 보시면 90년, 91년에 100조 엔 정도 하다 그 이후에는 100조 엔을 넘은 적이 없어요. 그런데 최근에 보시면 2023년에 아마 100조 엔 넘을 거라고 추계를 하고 있거든요. 왜냐하면 경제·안보 이슈에서 일본이 반사이익을 조금 얻었기 때문이에요. 반도체 같은 경제·안보 관련 중요 물자들을 국내에서 생산하려고 하면서 외국에 나갔던 기업들이 이제 국내에 들어오고, 또 그런 기업들에게는 일본 정부가 보조금을 많이 주고 있거든요.

 


2. “제발 돌아와!” ‘리쇼어링’에 승부 걸었다


Q. 이러한 변화들은 일본이 다시 제조업으로 회귀하겠다는 신호로 봐야 될까요?

일본은 10 나노 이하에서 리쇼어링을 하고 싶은 겁니다. 리쇼어링은 해외에 나와 있던 일본 기업들이 국내로 복귀하는 건데, 반도체로 예시를 들면 우리가 몇 나노 몇 나노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20 나노, 30 나노, 40 나노 같은 레거시 반도체는 중국이 잘하고 이미 중국에서 하고 있으니까 그건 그냥 놔두는 거예요. 그런데 10 나노 이하가 최첨단 반도체죠. 10 나노 이하는 절대 중국을 끼우지 않겠다는 겁니다. 중국을 제외하고 동맹국들하고만 하겠다는 게 디리스킹이거든요.

미국이 디커플링이라는 중국 경제 정책을 디리스킹으로 바꾼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디커플링은 완전히 중국을 배제하는 거잖아요. 디리스킹은 완전히 배제하는 게 아니고 최첨단 분야에서만 중국을 제외하는 거거든요. 그럼 왜 이렇게 바꿨냐, 일단 미국을 제외한 다른 외국의 반발이 너무 컸어요. 다른 나라들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데 무조건 배제하라 그러면 어떡하냐는 반발이 있었고, 또 하나는 미국 회사들의 반발도 컸습니다. 지금 중국에서 사업하는 기업들 많거든요. 갑자기 정부가 중국하고 사업하지 말라고 하면 굉장히 곤란하겠죠. 그래서 디리스킹으로 바꿨는데, 결국 경제·안보상의 아무리 중요한 이슈라도 기업의 모티베이션이나 인센티브를 무시하는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거거든요.

우리가 그 개념으로 일본을 보면 되죠. 일본이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기업의 모티베이션이나 인센티브랑 합치하는가,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에 기업들이 계속 밖으로 나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건 일본이 내수도 축소되고 자본 수익률이 낮아서 일본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해외에서 투자하는 게 훨씬 돈이 되기 때문에 나갔던 거거든요. 근데 이 상황은 지금도 크게 바뀐 건 없습니다.

바뀐 게 없는데 정부가 경제·안보상 중요하니까 들어오라고 한다 해도 그러지 않겠죠. 모든 기업이 국내로 회귀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최첨단 분야 있죠. 그런 반도체, 배터리, AI 양자 컴퓨팅 같은 것들은 경제·안보상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보조금을 주면서 기업들에게 장려를 하고 있어요. 유인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최첨단 분야 기업들은 이제 리쇼어링과 프렌드 쇼어링을 하죠.

예를 들어 대만의 TSMC가 지금 일본에 쿠마모토 공장 짓고 있잖아요. 한 3분의 1을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거든요. 그다음에 미국의 마이크론도 일본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고, 역시 일본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죠. 이런 식으로 최첨단 분야는 아마 프렌드 쇼어링, 리쇼어링 하면서 구축이 될 겁니다.


3. 일본은 왜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할까


Q. 왜 일본은 꾸준히 제로금리나 마이너스 금리 같은 저금리 정책을 실행했었는지가 궁금합니다.

일본이 제로금리를 1999년부터 실시했고요. 사실 저금리는 그거보다 더 빨리 실시했어요. 버블이 붕괴됐던 91년, 92년부터 금리를 계속 떨어뜨려서 저금리는 그때부터 시작이 됐습니다. 아예 제로 금리로 간 게 1999년이고, 거기서 마이너스 금리로 간 게 2016년부터죠. 그러니까 한 30년 이상 계속 낮은 금리를 유지했습니다.

일본이 7년 동안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건 일종의 트라우마 때문인데요, 어떤 트라우마냐면 2001년부터 2006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최초로 양적 완화를 했었어요. 양적 완화는 폴 크루그먼이라는 경제학자가 1998년 논문에서 처음 제시를 한 개념인데 그걸 일본이 제일 먼저 실험적으로 실시했거든요.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2001년 고이즈미 총리 때 실시했습니다.

왜 했냐면 일본이 90년대에 잃어버린 10년을 보냈잖아요.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우리가 실험적으로 양적 완화라는 걸 해보자고 한 겁니다. 그래서 나름 성공을 했어요. 그게 이자나미 경기 73개월 동안의 호황이거든요. 그래서 2006년이 되면서 ‘이제 호황이 됐으니까 그만해도 되겠다’ 이렇게 판단을 하고 양적 완화를 멈추고 금리를 살짝 올렸어요. 그런데 금리를 올리자마자 그다음 2008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칩니다. 그러면서 전 세계의 경제학자들한테 비난을 받습니다. 양적 완화를 할 거면 좀 더 길고 담대하게 해야지 하면서요.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유럽이나 미국은 양적 완화를 실시했는데 일본 은행은 그때는 또 주저하면서 못해요. 그러면서 정책 대응도 늦고 할 때도 제대로 못 한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일본 은행의 정책 입안자들, 담당자들이 트라우마를 입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충분한 신호가 보일 때까지 양적 완화를 섣불리 그만둬서는 안 되겠다는 컨센서스가 있습니다.

일본은 지금 밖으로 알려진 바로는 소비자 물가 상승률 2%가 꾸준히 나타나면 금리를 정상화하겠다고 했는데, 사실은 그거 말고 보는 게 세 가지 더 있습니다. GDP디플레이터, 단위당 노동 비용, GDP 갭이라는 걸 봐요. 이 세 가지가 다 플러스(+)로 전환이 되면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고 일본이 장기 침체에서 벗어났구나 하고 판단하는 건데 문제는 이 GDP 갭입니다. 계속 마이너스였어요.

그러다가 작년 2분기, 그러니까 4월, 5월, 6월에 이 GDP 갭이 플러스(+)로 전환이 됐거든요. 그럼 3개 다 된 거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금리 정상화를 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3분기 실적은 다시 GDP 대비 마이너스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정말 아슬아슬한 거예요. 마음 놓고 금리 정상화를 하자고 얘기하기가 굉장히 애매한 상황인 거죠.

우에다 일본은행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기자가 ‘일본이 대체 언제 금리 정상화를 할 거냐’ 이렇게 물어보니까 우에다 총재가 뭐라고 대답했냐면 “금리 정상화를 늦게 해서 생기는 부작용보다 섣불리 빨리 해서 생기는 부작용이 훨씬 두렵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늦게 해서 최후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금리 정상화를 했을 때의 부작용이 뭐냐면 고물가예요. 고물가의 고통을 국민들이 다 견뎌야 되는 거죠. 섣불리 빨리 해서 생기는 부작용은 잃어버린 30년의 확정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막 회복해서 조금 올라왔는데 금리를 올려서 다시 수렁에 빠지면 기껏  7년 동안 노력해 온 게 다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일본 은행은 물가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불황에서 완벽하게 탈출할 때까지 인내하면서 기다리자고 계속 설득하고 있는 겁니다.

 

 


4. “돈 쓸 사람이 없다” 슈퍼 엔저 끝날까

 

Q. 이런 저금리가 지속되면 생기는 문제점들이 어떤 게 있나요?

일본은 저금리 시대가 30년이 넘었죠. 91년, 92년부터 저금리 시대가 시작돼서 99년부터는 제로금리, 2016년부터는 마이너스 금리 이렇게 정말 저금리가 30년 동안 지속됐어요. 일본 장기 침체의 문제는 한마디로 얘기하면 돈 빌려준다는 사람은 많은데 돈 빌릴 사람이 없어서 생긴 불황이거든요, 돈 쓸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최근에 변화하고 있죠. 사람들이 돈 빌려서 이제는 집도 사고요, 기업들이 돈 빌려서 투자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경기가 좋아지고 있는 거죠. 지금 도쿄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돈 빌려서 집을 사니까 부동산 가격도 좀 오르고 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저금리 때문이라기보다, 이제는 금리를 정상화하는 시점에 왔기 때문에 금리를 올리면 엄청나게 큰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예를 들어 국가 부채 문제, 일본 정부의 국가부채가 전 세계 최고로 많잖아요. 재작년 기준으로 일본 정부의 부채가 126조 원 정도 됩니다. 일본 인구가 1억 2,600만 명이 조금 안 되기 때문에 인구로 나누면 일본 인구 1인당 1억 원씩 빚이 있는 셈이에요. 엄청난 빚이죠. 만약에 금리가 1% p 오르면 일본이 추가적으로 갚아야 될 이자가 한 100조 원 정도 돼요. 그러니까 10조 엔이 넘거든요. 엄청난 이자를 감당해야 되기 때문에 그게 이제 부담이 된다고 사람들이 얘기를 많이 하죠.

사실 이거는 약간 과장이 된 게, 경기가 좋아서 GDP가 상승하면 이 부담은 좀 줄어듭니다. 일단 세수가 늘고요, 그다음에 빚은 그대로 있는데 분모에 해당하는 GDP가 늘기 때문에 정부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은 걸리지만 빚을 조절하면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마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더 큰 문제는 뭐냐 하면 사람들이 금리 있는 세상에 대한 면역이 없어요.

무슨 말이냐면 30년 동안 특히 젊은 사람들, 2~30대나 40대까지는 금리가 없는 세상을 살아오다 보니 금리 있는 세상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어요. 예를 들어 집을 살 때 한국에서는 은행에 집담보 대출하면 100% 다 못 빌리거든요. 매년 조금씩 바뀌지만 어떨 때는 60%까지 빌릴 수 있고 어떨 때는 40%까지 빌릴 수 있고 이렇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100% 다 빌릴 수 있어요. 특히 30대의 70% 이상은 집 살 때 100%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집을 삽니다. 이자율이 0.2%에서 0.5% 정도예요. 그러니까 부담이 전혀 없어요. 30년 대출 끼고 월세 사는 것처럼 몇십만 원 정도 내면서 사는 거예요.

만약 금리가 올라가면 상상하지 못했던, 일본 젊은이들이 겪어보지 못했던 세상이 오는 거죠. 지금 실제로 금리가 약간 오르면서 고정금리의 경우 3%까지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품이 나왔거든요. 아마 이게 나중에 문제가 될 거고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 때 손해가 막심했기 때문에 정부가 금융 지원을 해줬는데, 무이자 무담보로 돈을 빌려줬거든요. 이게 한 1.9조 엔 되는데 이 중에서 1조 엔 정도가 회수 불가능해요. 왜냐하면 기업들도 대출 기간이 연장되면 다른 대출로 갈아타야 되는데 이제 금리가 약간 올라서 갈아타지 못하거나 아니면 갈아타더라도 물가가 상승하고 원재료 가격이 오르다 보니 기업들이 경영이 힘들어져서 이걸 못 갚는 경우가 생기는 거죠. 그래서 결국 금리 없는 세상에서 금리 있는 세상으로 변하면 이러한 면역이 없는 경제 주체들이 굉장히 고통을 겪게 될 수 있어요. 우리가 흔히 일본은 정부 부채가 문제고 한국은 가계부채가 문제라고 얘기하는데,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일본도 가계부채, 기업부채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Q. 슈퍼 엔저 현상은 끝난 건가요?

슈퍼 엔저라고 하는 건 잘 보시면 일본 때문이 아니고 미국의 정책 변경 때문이었거든요. 왜냐하면 일본은 1999년부터 25년 동안 제로 금리를 계속 실시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2016년부터는 마이너스 금리 실시했죠. 그러니까 일본이 바뀐 건 없습니다. 그런데 슈퍼 엔저가 시작된 건 작년 3월부터거든요. 2022년 3월, 작년 3월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가 벌어지면서부터 슈퍼 엔저가 시작된 겁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FOMC 회의 결과 금리를 더 이상 올리지 않겠다는 것이 명확해졌으니까 이제 150엔에서 더 엔화가 떨어질 가능성은 없고, 앞으로 미국이 금리를 떨어뜨린다면 엔저에서 엔고로 방향이 바뀌겠죠. 거기에 더해서 일본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엔고가 더 가속화될 텐데 지금 이제 두 가지 설이 나오고 있어요. 1월에 일본이 금리 정상화를 할 건지 아니면 4월에 할 건지. 4월에 하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춘투(봄 임금 인상 투쟁) 결과를 보고 일본이 임금 상승이 물가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는 거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 올리는 건데, 이럴 경우 불안한 요소가 한 가지 있습니다.

미국이 지금 금리 내린다고 했잖아요. 미국이 금리 내린다는 것은 미국의 경기가 이제 상승 기조가 꺾이고 침체 기조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거든요. 미국이 침체가 되면 일본도 그 영향을 받거든요. 수출이 잘 안 될 테니까 일본도 침체가 될 가능성이 큰데 거기에 대고 금리를 올리기에는 부담스럽죠. 그러니까 반대의 정책을 펴야 되기 때문에 차라리 일본이 좀 빨리 선수를 치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래서 1월에 일본이 먼저 금리를 올리고, 상황을 봐가면서 맞춰 대응하자는 거죠. 그래서 지금 우에다 총재가 엄청나게 고민하고 있어요. 전 세계 경제 흐름도, 미국의 움직임, 일본 국내 경제 상황도 예상해야 하는 엄청나게 고차원의 방정식을 풀고 있는 겁니다.


5. “한국도 변하고 일본도 변해야 함께 간다”


Q. 앞으로는 한국이랑 일본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또 어떻게 진단하는 게 바람직할지 궁금합니다.

한일 관계 질문 저는 정말 많이 받거든요. 이런 질문 많이 받아요. ‘한국이 일본과의 갈등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요?’ 근데 질문이 잘못됐죠. 갈등은 없앨 수 없습니다. 한일 갈등을 없애는 건 불가능해요. 갈등은 관리의 대상이지 제거의 대상이 아니에요. 갈등이 있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우리가 이 갈등을 어떻게 하면 조절을 잘해서 극단적인 상황으로 가지 않도록 컨트롤할 것이냐 이걸 고민해야 되고요. 그러려면 한국도 약간 변하고 일본도 약간 변해야 됩니다. 한국은 뭐가 변해야 되냐, 일단 ‘4대 강국’이라는 표현부터 이제 안 써야 돼요. 왜냐하면 4대 강국이라고 하는 나라들, 그러니까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만큼 한국도 지금 강국이에요.

중국이나 미국이나 일본, 한국 눈치 굉장히 보거든요. 지금은 19세기 20세기 초반하고는 완전히 상황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미·일 고래 싸움에 한국이라는 새우등이 터진다고 하는데 한국이 새우가 아니거든요. 이걸 우리가 인지하고 그렇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한국은 더 이상 장기판의 말이 아닙니다. 근데 ‘4대 강국’ 이러면 우리가 스스로를 말로 규정하는 거예요. 한국은 이제 장기판의 말이 아니고 장기를 두는 나라인 거죠.

이렇게 인식을 바꾸면 지구본을 내려다보는 외교 전략이 가능해져요. 우리는 항상 일대일 관계만 생각하거든요. 한일 관계, 한중관계, 한미 관계. 근데 이제는 전 세계를 바라봐야 돼요. 우리가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대아프리카 전략, 대남미, 대중동 전략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됩니다. 한국의 유력 정치인이나 기업 총수가 한마디 하면 전 세계 뉴스가 되는 세상이잖아요.

한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우리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전략을 짜야 되고 그러면 일본에 대한 과도한 관심도 이젠 좀 줄어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항상 일대일 관계로 세상을 바라보다 보니 일본에 대해 너무 과도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일본은 단지 22개 선진국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OECD를 보나 IMF를 보나 IBRD를 보나 공통적으로 꼽는 22개 선진국이 있어요. 그 안에 한국과 일본이 들어가거든요. 그러니까 22분의 1로 우리가 생각을 하면 돼요. 그럼 이제 일본도 어떻게 해야 하냐, 일본은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는 걸 이제 인정해야 합니다. 일본의 젊은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어요. 한국이 일본보다 소득 수준이 높아졌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 문화 즐기고 있고요, 일본의 초등학생들 지금 K-POP 열풍이에요. 일본의 젊은이들 전부 다 K-드라마 보고 있고요, 한국에 유학 오는 일본 학생들 엄청나게 많아요. 그런데 일본의 기성세대들, 유튜브도 잘 안 보시고 TV도 잘 안 보시는 일본의 기성세대분들은 좀 그런 경향이 있거든요. 60대, 70대, 50대도 그렇고요. 이분들은 아직도 한국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래서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는 거를 이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정책을 만드는 건 또 이분들이거든요. 그래서 온도 차가 좀 있어요.

일본은 한국을 일본 말로 나카마이리(なかまいり)라고 합니다. 이제 어깨를 나란히 할 관계가 됐다는 거죠. 친구가 됐다는 겁니다. 한국의 성장을 위기로 느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협력할 건 협력하고 또 경쟁할 건 경쟁해야 되는 거죠. 또 따져야 될 건 따져야 되고요. 그래서 한국과 일본이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